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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인질링(Changeling)*을 보셨거나, 혹은 최근 언론을 뜨겁게 달군 '제주 장미란 실종사건' 소식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1920년대 부패한 미국 LA 경찰의 실상을 다룬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체인질링. 그리고 2020년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일어난 한 여성의 실종 사건.
처음 이 제주 사건의 전말을 접했을 때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 어떻게 100년 전 영화 속 이야기가 지금 우리 곁에서 똑같이 일어날 수 있지?"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절박한 순간에 공권력이 보여준 무성의함과 기만, 그리고 행정 편의주의. 오늘은 일반 시민의 눈으로 이 두 사건이 왜 그토록 닮아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다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1. 두 사건의 개요: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다
- 영화 '체인질링' (실화 바탕): 1928년 LA, 어린 아들 월터를 잃어버린 어머니 크리스틴. 경찰은 부실 수사 비판을 피하기 위해 엉뚱한 아이를 월터라며 가져다주고 사건을 강제 종결하려 합니다. 엄마가 "이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항의하자, 경찰은 그녀를 오만하고 정신 이상이 있는 여성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감금해 버립니다.
- 제주 장미란 실종사건: 2020년대 제주, 30대 여성 장미란 씨가 실종됩니다. 가족들의 간절한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담당 경찰관은 실종자와 통화한 적도 없으면서 "본인과 연락이 닿았다"고 상부에 거짓 보고했습니다. 심지어 프로파일링 시스템에는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유를 입력해 단 2시간 30분 만에 사건을 임의 종결 처리했습니다. 결국 장 씨는 실종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2. 공통점: 공권력이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이유
두 사건을 보며 가장 분노가 치밀었던 지점은 바로 이 세 가지 공통점 때문입니다.
① '실적과 편의'가 '사람의 목숨'보다 우선이었다
공경찰이라는 이름으로 월급을 받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자들이 선택한 것은 '귀찮은 일거리 없애기'였습니다. 체인질링의 LAPD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거짓 연극을 꾸몄고, 제주의 담당 경장은 수사의 번거로움을 피하거나 실적 시스템을 조작하기 위해 시스템에 허위 사실을 당당히 입력했습니다. 국민의 생명보다 자신의 퇴근 시간, 혹은 성과표 한 줄이 더 중요했던 겁니다.
② 골든타임의 완전한 박탈
실종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초동 수사'와 '골든타임'입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공권력의 거짓말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렸습니다. 제주의 경우, 경찰이 사건을 2개월 이상 허위 종결 상태로 묵혀두는 바람에 현장 인근 CCTV 118대의 영상이 보존 기한 경과로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경찰 손으로 직접 지워버린 셈입니다.
③ 시스템의 상호 검증 부재 (감시받지 않는 권력)
담당자 한 명의 일탈이라고 꼬리 끊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체인질링에서 반장과 경찰서장이 한통속이었듯, 제주 사건에서도 담당관이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어이없는 사유로 실종 사건을 종결짓는 동안 상급자 결재나 내부 검증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쉽게 썩어 들어가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입니다.
3. 차이점: 시대와 수법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 비교 항목 | 영화 '체인질링' (1928년 미국 LA) |
제주 장미란 실종사건 (2020년대 대한민국) |
|---|---|---|
| 조작의 방식 | 아날로그적 폭력 가짜 아이를 내세우고, 피해자 가족을 정신병원에 감금 |
디지털 시스템 조작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허위 사실('교통사고 사망' 등) 입력 |
| 피해 대상의 연쇄성 | 한 인물과 그 주변에 집중된 권력의 직접적 압박 | 장미란 씨 외에도 60대 남성 실종 사건 등 다수 사건 연쇄 허위 종결 |
| 은폐의 목적 | 조직의 부패와 무능을 덮기 위한 대외적 언론 플레이 | 개인의 업무 소홀 및 행정적 편의를 위한 내부 전산 조작 |
100년 전 미국은 '정신병원 감금'이라는 무식하고 야만적인 폭력을 썼다면, 현대 한국에서는 '컴퓨터 자판 몇 번 두드리기'라는 세련되고 스텔스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렸습니다. 수법은 스마트해졌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악의와 무책임함은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맺으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 손을 내밀 곳은 경찰서입니다.
하지만 이번 제주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불신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울부짖으며 신고했을 때, 저들이 뒤에서는 자판을 두드려 '종결' 처리하고 퇴근하면 어쩌지?"라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체인질링의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틴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공권력의 비리와 싸웁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명의 경찰관을 처벌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됩니다.
독립적인 수사 감시 기구 마련과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엄격한 이중 검증 절차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장미란 씨는 또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첨단화되어도, 그 시스템을 다루는 사람의 윤리의식이 1920년대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제주 실종사건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